오기수 집배원

오기수 집배원

안면우체국 근무하던 오기수 집배원은 1980년 12월 12일 저녁 6시 30분경 우체국을 출발하여 10km 떨어진 안면읍 신야리 엄정한씨 집에 5원짜리 우표가 붙은 농민신문 1통을 배달하고 7시경 돌아가려는데 당시 영하 15도의 눈보라가 치는 어두운 날씨 때문에 엄씨는 자고 갈 것을 당부하였으나 오기수 집배원은 우체국에 남은 8통의 우편물을 더 배달하기 위해 서둘러 발길을 재촉하였다.

그러나 오기수 집배원이 다음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자 우체국장과 동료 집배원 8명은 오씨의 배달구역을 수색하였고, 오전 11시경 엄씨 집에서 400m떨어진 안면읍 중장리 유망맞이 해변 벼랑길 지점에서 오기수 집배원이 동사한 채 발견되었다. 순직 당시 유족으로 부인과 3남 3녀를 두고 있었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장례 비가 없자 동네 주민들이 음식을 준비해 장례를 치러 주었다.

오기수 집배원의 순직 소식은 당시 중앙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국일보, 서울신문 등을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며 남은 가족들에게 전국 각지의 온정으로 600만원의 성금을 보내왔으며, 체신부는 1981년 4월 21일 체신부 공무원들이 자율적으로 모금한 성금600만 원으로 추모비를 만들어 오기수 집배원이 근무했던 안면우체국 앞뜰에 세우고 매년 12월 12일 추모제를 실시하였다.

만국우편연합(UPU)은 오기수 집배원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기관지인 유니언 포스털(Union Postale)지에 관련 기사를 7개 국어로 번역해 게재하여 세계 160개국에 발송하였고, 국제사무국의 ‘아크바’ 차장은 1981년 3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아태우편연합 제4차 총회에서 오기수 집배원의 사례를 전세계 우편 종사원들이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세계적으로도 전파되었다.

오기수 집배원 순직 당시 안면우체국장이었던 강정평 국장은 개인이 30년간 소장하고 있던 오기수 집배원 관련 책자, 신문스크랩, 사진 등 사료를 우정사업본부에 기증하였으며, 1984년판 초등학교 6-1 도덕교과서에 오기수 집배원의 순직 내용이 수록되기도 하였다.

우정인의 숭고한 희생정신을 후배들이 이어받아 귀감이 되고자 우정사업본부장의 지시에 따라 2011. 3. 10. 현 위치인 우정인재개발원으로 이전하게 되었으며 관련 사료는 우정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다.

순직비

오기수집배원 순직 추모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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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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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언 포스털(Union Postale)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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